지난 화요일 있었던 대선후보들의 2차 합동토론회를 뒤늦게 KBS 다시보기로 챙겨보았습니다. 6명이나 되는 후보들을 불러놓고 2시간 토론을 하다보니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토론이라기 보다는 그냥 자기 의견 개진의 시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는 후보들간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정책의 차이를 엿볼 수 있었던 같습니다.
좀 뒷북이긴 하나 2차 토론회를 보고 몇 자 끄적여봅니다.
1. 문국현 후보의 교육관이 아름다웠다.
일찍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누이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필요성을 배운 후보답게 교육관 역시 따뜻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교육이란 평생에 걸친 학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지식의 주입보다도 인성교육과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환경의 학생들이 모여 있을 때, 비로소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들은 답답한 토론회의 와중에 작은 감동이었습니다.
2. 평준화가 실력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와?
이인제 후보를 비롯해서 이회창 후보 등은 지금의 고교평준화가 학생들의 실력 저하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난 12월 4일에 발표된 Pisa 결과에서 한국의 15세 학생들은 읽기 영역 1위, 수학 2위를 차지했습니다.(제 블로그 기사 http://ratioius.tistory.com/60 참조)
물론 이 결과가 사교육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씁쓸하긴 하지만, 평준화로 인해 학생들의 실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3. 자립형 사립고, 뭘 자꾸 만들어?
이명박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새로운 형태의 고등학교를 자꾸 더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기존에 없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선거 때마다 손쉽게 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100여개 넘는 자립형 사립고 등을 만드는 것은 지금의 고교 평준화 정책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교육은 더욱 극성을 부리겠지요. 사교육을 막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 등을 100여개 이상 만들자는 발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현재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4. 교육은 비지니스가 아니다
이명박 후보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은 특히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고등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그의 공약을 설명하면서, 교육을 수요와 공급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해외로 유학을 나가고자 하는 학생과 부모들의 수요를 국내에서 해결해주자는 발언이 바로 이를 뒷받침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특수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질 좋은 공교육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5. 대학서열, 학벌중심 사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은 계속된다. 쭈욱~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한 후보는 권영길 후보였습니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꾸고, 어떠한 제도를 도입해도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바로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중심의 사회 때문입니다. 자립형사립고를 100여개를 만들건, 입시제도를 새롭게 뜯어고치건 간에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제도가 도입되어도,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 좀 더 좋은 학벌을 지니길 바랄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받는 교육보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더 배우게 하려들 것이고, 따라서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권영길 후보의 대학 평준화 공약은 이런 면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공약인 만큼 아마 가장 현실에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최소한 국, 공립대학들만이라도 통합하여 서열화 폐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6. 교육의 핵심은 기회의 균등이다.
기회의 균등은 왕과 귀족이 존재하던 신분제 사회를 철폐하면서 등장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핵심적 이념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물론 현실에서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이상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 중에서도 기회 균등을 위한 가장 가장 기초적 요구는 바로 교육에 대한 기회의 균등입니다. 언제부터 [수월성]이라는 그럴 듯한 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만을 위한 특수한 교육의 기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적 이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차리리 제대로 된 영재학교나 만들면 모를까, 제대로 된 영재학교는 만들지도 못하면서,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이상한 형태의 고등학교나 100여개 씩 만들겠다는 발상은 교육을 위해 필요하지 않습니다.
7. 대학경쟁력 향상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학생 스스로의 [동기부여] 밖에 없다.
평준화되어 있는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세계 1, 2위이지만, 대학교 중에 상위에 랭크된 대학은 하나도 없다는 권영길 후보의 지적은 상당히 날카로왔습니다.
제 생각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교 입학 후 급격하게 학업에 대한 동기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중, 고등학교 때 학생들이 자의건, 타의건 죽어라 공부하는 것은 상위서열 대학 입학과 좋은 학벌을 얻고자 하는 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 후 자신의 학벌이 결정되고 나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 뒤로 학습에 대한 동기를 상실합니다. 레포트는 인터넷에서 배끼고, 시험 때는 컨닝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만연해있고, 이런 일들이 그냥 묵인되기도 합니다.
중, 고등학교 내신시험 때, 또는 수능시험 때 부정행위를 하면 어떻게 되나요? 결코 묵인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요?
그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대학입학에만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토론회를 보면서, 교육 문제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문제인식과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갖고 있는 후보들이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선거는 왜 늘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막는 것일 수 밖에 없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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