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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이 서거하시면서 이제 존경받을만한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우리 곁을 떠났네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독일 언론들도 곧바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독일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짜이퉁(FAZ)은 다른 언론매체들에 비해 상당히 길고 자세한 내용의 기사를 싣고 있어 눈에 띕니다.

아마 한국, 한국인 관련 기사 중에서 제가 본 가장 긴 내용의 기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FAZ 외의 다른 언론사들도 비교적 자세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벨트 지 헤드라인: "햇볕정책의 창시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슈피겔 지 헤드라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남한의 전 대통령 김대중 서거

 


포커스 지 헤드라인: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아래에서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짜이퉁의 기사내용 전문을 번역해서 올려드립니다. 기사의 맨 마지막 문단 두 문장이 이상하게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네요.
(원문링크)

FAZ 헤드라인: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기사작성: 페트라 콜론코(Petra Kolonko) 기자 / 2009 8 18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을 때, 남한의 이 노벨상 수상자는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의연히 싸우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시아에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며 그를 비난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남한의 대통령이었던 그는 아시아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사상가는 서구사회에 앞서 이미 오래전부터 아시아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존재하였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개념을 창조해냈었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성공적인 투사였으며 동아시아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수십년 동안 자신의 고향인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야당활동을 하면서 군부독재에 맞서 싸워 성공한, 지나칠 정도로 고집스럽고 이상주의적인 정치가였다. 비밀정보요원들의 추적과 암살시도, 그리고 오랜시간의 감금과 가택연금 및 망명생활도 그의 정치적 참여를 그만두게 하지 못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투옥으로 인한 고통스러움과 공격시도로 인해 다리를 절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만델라로서 그는 또한 외국에서도 환영받았다.

 

빌리 브란트는 그의 롤모델

 

노르웨이의 노벨상위원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과 남한 사이의 화해를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노벨평화상 수여 직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으로 갔었는데 북쪽과 남쪽의 지도자가 서로 만나 회담을 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화적 공존정책에 합의하였고 긴장완화정책과 상호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할 것임을 알렸었다. 두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성과였는데, 이 정책은 그가 대통령 선거 후인 1997년부터 시작되었던 정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이웃 공산주의국가와의 관계에서 친화적인 태도를 통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에 위협과 차단 대신에 협상과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당시 그의 롤모델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긴장완화정책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고자 하였다.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흡사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역시 자신의 나라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비판자들은 공산주의 국가에 너무 많은 것을 주고 너무 적게 받아온다며 헐뜯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확고히 유지하는 끈기있는 정치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5년 한 농가의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해운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신문발행인이었다. 1961년 카톨릭 신도였던 그는 의회에 처음 진출하였으며 야당의 대표로서 유명해졌다. 1971년에 그는 박정희를 상대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지만(이 부분은 기자의 표현상의 실수인지 아니면 당시의 부정투표의혹을 사실로 인정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승리를 사실로 받아들인 것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문맥과 느낌상 후자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박정희가 전시법률로 그를 처벌하기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으로 떠났고 그 뒤에는 미국에서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박정희는 카리스마 넘치는 라이벌이 침묵하기를 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에 체류 중일 때 남한의 비밀요원들이 그를 납치하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명백하게 박정희에 의해 계획되었던 김대중 암살기도는 간신히 저지될 수 있었다. 이 독재자는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도전자를 해치지 않았으며 대신 그를 가택연금시켰다. 1976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한에서 민주주의 운동단체의 결성을 후원하였다는 이유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선고

 

군부독재자 박정희의 암살 이후인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주 짧은 자유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군부독재자 전두환은 그에게 내란음모를 준비하였다는 명목으로 1980년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후에 사형은 징역형으로 감형되었고, 그는 1982년에 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985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또다시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민주주의적 방식의 첫 번째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1987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보로 나섰지만 노태우 후보에게 졌다. 1991년 두 번째(기자가 1971년의 선거를 포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전 역시 실패하자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뼛속까지 정치가였던 그는 정치를 포기할 수 없었다. 1995년에 그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였고 다시 남한의 야당지도자가 되었다. 야당의 공동후보가 된 그는 결국 199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시작은 남한에 심하게 타격을 주었던 아시아 금융위기의 시점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을 노동조합 친화적이며 사회국가적 정치가로서 알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 단호한 경제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는 재벌(Chaebol)의 권세를 축소시켰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조건을 이행하였다. 남한이 다른 국가들보다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만 할 일이다.

 

논쟁의 대상이었던 햇볕정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을 식민통치했었던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였다. „21세기의 파트너쉽이라는 공동선언은 그의 재임시절 이루어졌는데, 이 때 일본은 한국을 식민통치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였다. 일본과의 화해의 또다른 징표는 2002년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이었다.

북한과의 긴장완화를 위한 거대한 계획, 햇볕정책은 시작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임자들의 재임기간 중에는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과의 접촉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화와 경제적 지원을 통해 북한을 개방하고 인도주의적인 체제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계획을 위한 조력자는 북한에서 태어났으며 햇볕정책의 중개자이자 자금조달자의 역할을 했던 현대 그룹의 설립자였다.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은 이 계획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정상회담의 비판자들은 당시 비공식적으로 떠돌던 소문, 즉 정상회담 전에 3억 유로 이상의 돈이 남한으로부터가 아닌 다른 경로로 공산주의 체제인 북쪽에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2003년 의회의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돈으로 매수한 정상회담이라는 표현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빛이 바래졌다. 하지만 그는 그 돈은 북한의 경제개발계획을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하였다. 하지만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돈이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전달된 것에 대해 사과해야만 했었다.

 

악평과 고립

 

북한의 권력자인 김정일은 햇볕정책이 점점 더 격렬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행동들을 해왔다. 이산가족상봉처럼, 이미 약속된 인도주의적 조치들은 항상 충분치 않았으며 2002년에는 심지어 해상경계선 상에서 남측과 북측의 군함이 소규모 전투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임시절 미국의 대북정책은 변화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워싱턴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북한은 부시의 정책에 남한과의 접촉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고립되었고 그의 햇볕정책은 혹평받았다. 그의 명성은 자신의 두 아들과 몇몇의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던 협력자들의 부패스캔들로 인해 손상을 입기도 했었다. 그의 5년간의 재임기간 말기에는 더이상 사랑받지 못했으며 자신의 조국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큰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자 했던 후임자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운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평양으로 가서 이뤄지게 된 두 번째 정상회담은 큰 성과가 없었다. 현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완전히 수정하였고 앞으로는 북한에 먼저 급부를 제공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지금까지, 특히 북한이 올해 핵실험과 로켓발사로 국제사회를 도발하기 전까지 남북간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의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아무런 성과없음과 관련하여 북한을 다루기 위해 햇볕정책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화요일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83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FAZ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들도 몇 장 올라와있네요.

인상적인 사진들 몇 장 올립니다.

FAZ 사진설명: 2001년 3월 12일 "동아시아의 만델라"가 넬슨 만델라와 만나다


FAZ 사진설명: 1969년 독재에 맞서 연설 중인 김대중

FAZ 사진설명: 1981년 사형선고 후 청주교도소에서의 김대중

FAZ 사진설명: 1990년 독재에 맞서 단식투쟁 중인 야당지도자 김대중(사진 속 여성은 부인 이희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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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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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udiem.com BlogIcon Udiem 2009/08/19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위젯 커뮤니티 유디엠입니다.
    저희는 온 국민이 슬퍼하는 김대중 前대통령님의 서거에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위젯을 만들어 배포중 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가슴 깊이 빕니다.
    http://blog.udiem.com/66

    • 자료 2009/08/22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외국의 평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76605

      김대중 대통령이 세운 불멸의 기록들
      http://bopstory.tistory.com/399

      딴지일보... [추모]청년 김대중에 대하여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7&article_id=4654

      딴지일보... [틈새논평] DJ가 옳았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7&article_id=4629

      DJ측 "<중앙> 문창극 칼럼,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오늘자 <중앙일보>에 반론 게재...
      "비자금 조성 의혹 보도들 모두 허위판명"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4643&CMPT_CD=P0000

      DJ를 보내드리기 전 벗겨드려야 할 오해 5가지(1.“햇볕정책이 북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 웃기는 소리다 2.“정상회담 대가로 돈을 주었다?” 아니다, 현대의 대북사업권 대가다 3.“대북 퍼주기다?” 천만에, ‘퍼오기’ 시대가 오고 있다 4.“김대중은 친북좌파다?” 이제 더 이상 색깔론은 그만 5.“수조원대 비자금이 있다 더라” 천만에)
      http://blog.ohmynews.com/cjc4u/294178

      [특파원 리포트]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값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이 또 다시 워싱턴에 회자되고 있다. 미셸 깡드시 前IMF총재,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총재, '레이건신화' 마이크 디버등)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021711

      [김 前대통령 서거] 민주화·대북 화해정책… 현대사에 큰 획(시련·영광 점철된 한국정치 50년의 거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81627195&code=910100

      [김 前대통령 서거] 암살·납치·사형선고… 5차례나 죽음 문턱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81616245&code=910100

      후광 김대중 평전 [1회] 무수한 ‘총구’앞에서 살아남아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286007

      [김前대통령 서거] 그는 타고난 정치인이었다(논리정연하고 호소력 짙은 화술은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 화술의 천재, 필리핀 민주화의 영웅 고 비니그노 아키노와 넬슨 만델라와의 일화)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390861&code=41111111&cp=nv1

      김대중 가는 길이 곧 역사였다
      [DJ의 일생] '한반도의 미래' 개척한 평화의 지도자 ("미국의 오바마 정권이 자리를 잡으면 올 가을부터 본격적인 북미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햇볕정책이 무슨 죄냐"…노무현의 중심을 잡아준 한마디, "햇볕정책이 무슨 죄냐"…노무현의 중심을 잡아준 한마디, 6·15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80년대 서독의 보수보다 못한 한국 보수, 그리고 DJ의 절망)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18141445&section=01

      청와대 출입기자가 본 DJ /굿바이 DJ
      http://blog.ohmynews.com/airon/234797

      노무현 역사 이어달리기, 질투는 없다
      故노무현前대통령 "DJ는 그 시기에 가장 탁월했던 정치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2937&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한국인 노벨상수상 가로막는 노벨상모독- "이상한 한국" 세계가 개탄하는 보수집단의 도넘은 노벨상 모독(노벨위원회 군나르 위원장 “오히려 한국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상을 주면 안된다는 `기이한’ 로비가 있었다” 그는 또 "특정지역에서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 그이유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르타 대통령 인터뷰등)
      http://www10.breaknews.com/sub_read.html?uid=81106§ion=section1§ion2

      무책임 언론보도에 멍드는 국민(노벨평화상 로비설-조중동 망국론... 노벨위원회 “오히려 한국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상을 주면 안된다는 `기이한’ 로비가 있었다”)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25/2002/10/005100025200210152255435.html

      "DJ '노벨상 로비설'은 무지의 소치외부로비 있을 땐 해당자 제외해" [인터뷰]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1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있는 '2000년 노벨평화상 로비' 의혹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가이르 룬데슈타트(Geir Lundestad)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노벨위원회가 뒷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다"며 한국내 논란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룬데슈타트 총장은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김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고 덧붙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90794

      보수측의 대북지원 현금 '뻥튀기' 논란
      지난 10년간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현금'이 실제로는 40만 달러에 불과한데도, 7천배가 넘는 29억 달러로 부풀려져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199697

      [DJ서거]국가 위기마다 ‘DJ노믹스’처방…IT강국 터 닦았다(김대중 경제팀 노력의 결과, 우리경제는 세계가 놀랄만한 속도로 제자리를 찾는데 성공했다. 과감한 기업ㆍ금융 구조조정, 공적자금을 활용한 속도 빠른 부실 정리, 외채 정리와 외환보유고 확충을 통한 국가신용도의 신속한 회복 등 그는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탈출시켜 이후 경제성장의 기틀도 만들어냈다.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한국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김 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작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속에서 지난 98년 이후 그가 펼친 외환위기 극복 과정은 배워야 할 선례로 수 차례 주목받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그가 한국경제에 기여한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8/18/200908180669.asp

      <DJ정부 최대 경상흑자…경제성적 우수> 역대 정권 중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권은 경제가 파탄 난 외환위기 직후 취임했지만, 대외 지급능력을 의미하는 외환보유액 확충과 물가 관리 측면에서도 선전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기조 탈피 등 미완의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국가적인 재앙인 외환위기를 극복한 점만으로도 김대중 정권이 경제 측면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IT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를 지식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해 IMF 졸업 이후의 경제 발전이 가능했다"며 "외신들이 한국을 `IMF 모범생'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선임연구원은 "기업과 은행이 줄도산하고 순식간에 15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재앙'이 덮쳤는데도 사회적인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조기에 수습한 것은 김 전 대통령 특유의 `설득의 리더십' 덕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기업 재무구조, 고용 유연성, 공공부문 개혁 등 우리 경제의 구조를 개선한 점도 김 전 대통령이 거둔 큰 성과로 꼽혔다.
      http://news.nate.com/view/20090820n01972

      MB “한국, 1990년대 말 금융위기 극복 비결은” WSJ에 기고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327500012

      MB, '잃어버린 10년'이라던 김대중 업적을 극찬? 이명박 대통령의 美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을 보고 느낀 점
      http://www.nakore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45

      경제계,경제단체 "외환위기 조기극복 이끌어"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기셨으며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는 해외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 경제의 조기 회복에 기여하셨다. "경제계는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의 `나라사랑` 정신을 높이 기리며 어려운 경제 상황을 조기에 극복하는 데 적극 나서 선진 일류국가 건설에 더욱 매진하겠다", "김 전 대통령은 기업을 위하고 기업을 이해했던 지도자였다"면서 "금 모으기 등 국민적인 노력으로 IMF 사태를 조기에 극복했던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전경련,한국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 대기업등..)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438490

      함세웅 신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는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
      http://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4384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어록모음 "난 모두를 용서했다"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437813

      美오바마 대통령, 애도성명 발표 "DJ 헌신.희생 안잊혀질 것" ("용기있는 민주화와 인권 투사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슬픔에 빠졌다" 美국무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중략)
      http://news.nate.com/view/20090819n01354?mid=n0207

      英 여왕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 서거를 애도하는 조문- "김 전 대통령의 1998년 런던 방문과 그다음 해 이뤄진 저의 공식 방한 당시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며 "김 전 대통령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분이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정말 기뻤다" )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819151104174&p=yonhap

      김대중ㆍ바이든 ‘특별한 인연’ 넥타이 일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던 바이든 부통령, 1981년 ‘내란음모사건’ 연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형 중단 요청으로 감형돼,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납니다. 지한파이자, ‘대북 포용정책’ 지지자였던 바이든 부통령은 이때부터 김 전 대통령과 교분을 쌓기 시작합니다. 두 정치인의 인연은, 넥타이에 관한 일화로 유명합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821102407137&p=yonhap

      클린턴 부부 “김 前대통령 그리울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감하고 강력한 이상을 가진 지도자였다"며 "한국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넘어서게 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닦고 국제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 나는 남.북한의 화해를 위해 그와 함께 일하는 영광을 누렸다"며 "햇볕정책이 한국 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도 영속적인 평화에 대한 희망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090819071003540&p=ned

      리비어 "한국의 민주주의는 DJ 노력의 결과"(남북관계는 물론 민주화와 인권, 자유를 위해 노력해 이룬 모든 것이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위기 회복에서 김 전 대통령이 한 것이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김 전 대통령이 한국의 민주화.인권.남북관계에서 이룬 엄청난 업적과 그가 한국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추앙하는지도 서한에 담을 예정이다.)
      http://news.nate.com/view/20090819n00250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세계인이 보내온 마지막 인사(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고이즈미,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예이르 루네스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2077.html

      <종합> 김 前대통령 서거, 세계 지도자들 반응 (美오바마대통령 공식 성명 발표, 영국, 독일,프랑스,일본 현 전총리,야당대표(정부), 중국국가주석, 노르웨이,노벨평화상수상자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김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중요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 쿠슈네르 장관)......... 그외,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부자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편지 보내와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과 애도... 이날 데니즈 오즈멘 터키 대사, 시게이에 토시노리 일본 대사, 필립 티에보 프랑스 대사, 마크 포폴라 미국 부대사, 인스타인벨 노르웨이 대사, 스페인 대사, 이탈리아 대사, 엘살바도르 대사, 청융화 주한중국대사 참사관,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http://news.nate.com/view/20090819n00324

      유럽 신문들, "DJ, 민주화 위해 헌신"
      http://news.nate.com/view/20090820n03038

      DJ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해외 지인들
      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8169&section=sc1

      "美여기자 석방 DJ가 도와" 그레그 전 대사 (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핵문제로 얼어붙은 북미관계를 풀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결심했다" 올해 초 오바마 대통령에게 난항을 겪고 있는 북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언하는 편지를 써 달라고 김 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는 것.)
      http://media.daum.net/foreign/america/view.html?cateid=1043&newsid=20090819064303753&p=newsis

      WSJ, "세계 13위 경제대국.민주주의…김 전대통령의 유산"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090819143113380&p=mk

      김 前대통령 서거 세계 언론 반응("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미국,영국,독일,프랑스,스위스,러시아,중국,일본,인도,대만홍콩,배트남필리핀,태국,호주,남미,아랍권- 전세계 주요 언론은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초석을 다진 정치인이 숨졌다"며 파란만장했던 일대기와 함께 비중있게 보도했다. 각국 언론 매체들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극복, 노벨평화상 수상 등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http://news.nate.com/view/20090818n20587

      노벨평화상의 나라 노르웨이 '추모 물결' (노벨위원회 "수상자 선택에 자부심", "용서와 화해의 정치, 만델라와 비슷" )
      http://news.nate.com/view/20090819n00559

  2. 구미왕 2009/08/19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유하는것은 그사람의 근본도 의심 스럽다...

    • Favicon of http://ratioius.tistory.com BlogIcon 라티오 2009/08/19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로서는 독재자를 독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정치의식수준이 더 의심스럽군요...

    • 이현균 2009/08/20 0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재의 개념은 알고 계시는 건가요?
      군사정변으로 잡은 정권을 유신헌법등 치욕적인 헌법개헌을 통해 그대로 유지하려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은 아실텐데...;;

  3. 구미왕돌앗니 2009/08/20 0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가 독재자가 아니면 뭔가, 역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잇으라. 중학교나 제대로 나오셧는지 모르겟군

  4. 2010/05/03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www.eluxuryc-shop.com/ BlogIcon louis vuitton bag 2010/10/12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영국,독일,프랑스,스위스,러시아,중국,일본,인도,대만홍콩,배트남필리핀,태국,호주,남미,아랍권- 전세계 주요 언론은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의